중국 공산화에 나비효과로 작용한 일본군의 작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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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의전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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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과 중일 전쟁 초중반부에 증명되었듯 중국 국민당 정부군과 장쉐량을 비롯한 군벌 잔당들의 군사력으론 당시 아시아 한정 최강이자 첨단이라 불리던 일본 육군의 공격을 막아내기엔 매우 버거웠음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울리며 파죽지세로 대륙으로 진출하던 일본군을 상대로 국민당 측은 일본의 점령지가 주요 거점 도시 위주란 걸 알아채고, 이 넓은 중국 땅에 일본의 한정된 행정력과 군사력의 지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교외 지역과 시골 농촌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게릴라 전술을 펼쳐 넓게 흩어진 일본군의 보급망에 혼선을 주고 깨트리는 등 게릴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봄
중일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이를 타개할 목적으로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군을 상대로 일본 육군은 50만에 달하는 대규모 병력을 중국 곳곳에서 긁어모아 1944년도 3월부터 동년 12월까지 최후의 공세를 펼치는데 이것이 바로 훗날 중국 국공내전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일명
대륙타통작전(일호 작전 혹은 이치고 작전)

빨간색 화살표: 일본군의 진격로
검은색 실선과 점선: 철도
보라색 동그라미 별 모양: 미군이 쓰던 공군기지
50만 병력에 15,000대의 차량, 6,000대의 야포, 800대의 전차에 말과 비행기까지 동원해가며 장제스의 국민당군을 파죽지세로 무찌르며 당시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충칭까지 위협하기에 이른다
장제스 왈 대일 항전 이래 최대 위기라 할 만큼
일본 육군과 싸울 때마다 얻어터지며 만신창이가 된
국민당 정부는 겨우겨우 수도 충칭과
그 주변 지역을 방어해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은 일본군의 주요 전력이 중남부 일대에 집중돼 있는 걸 확인하고, 일본군이 빠져나간 화북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며 점차 세력을 키워가더니 2차 대전 말기에 이르러서는 무려 120만이나 되는 대규모 병력 확보에 성공하며 당시 중국 내 주둔중이던 일본군보다도 많은 병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국민당이 일본군과 피터지게 싸울 동안 모택동의 공산당은 최대한 일본과의 전투를 피하고 일본군이 중남부로 차출돼서 치안과 군대의 공백이 생긴 지역을 돌아다니며 세를 불린 것..
결국 2차 대전과 중일 전쟁 종전 후,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미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도 일본군과 싸우느라 훨씬 약해진 세력과 민심을 잃은 대가로 3년간의 국공 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쫓겨나고 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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