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흑수저썰 댓글 (1 )

작성자 정보

  • bonobom 작성
  • 5 조회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내가 처음 기억하는 집은 늘 시끄러웠다.

어린아이에게 집은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집의 밤은 그렇지 않았다.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

깨지는 그릇 소리.

그리고 서로를 향해 쏟아내는 고함.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귀를 막곤 했다. 그래도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벽을 뚫고 들어온 목소리는 작은 방 안까지 따라왔다.

아버지는 한때 사업을 했다고 했다.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였는지,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맞섰다.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어린 나는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아버지가 무서웠고, 어머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오늘 밤은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밤은 조용히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어제 본 TV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사실은 새벽까지 잠을 못 잤으면서.

사실은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으면서.

그 시절의 나는 너무 어려서 우리 집이 이상한 집인지도 몰랐다.

모든 집이 비슷한 줄 알았다.

부모는 싸우고, 아이는 눈치를 보며 자라고, 돈은 늘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슬펐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니까.

중학교까지는 몰랐다.

세상에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학원을 다니고, 누군가는 부모와 여행을 가고, 누군가는 생일마다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는 것을.

친구들은 문제집을 쌓아 놓고 공부했다.

누구는 과외를 받았고, 누구는 유명 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나는 교복 하나를 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운동화가 닳아도 쉽게 말하지 못했다.

축구화가 필요해도 며칠을 고민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그때마다 미안했다.

부모에게 미안했고, 돈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가난보다 더 힘들었던 건 가난을 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조용한 사람이 되어 갔다.

눈에 띄지 않으면 상처도 덜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조용한 사람을 그냥 두지 않았다.

힘이 없으면 무시당했고, 가진 것이 없으면 더 쉽게 밀려났다.

그럼에도 나는 버텼다.

왜 버틸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낙천적이었던 건지, 둔했던 건지, 아니면 포기하는 법을 몰랐던 건지.

확실한 건 하나다.

그 시절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끝까지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게 될 첫 번째 힘이 되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경험치랭킹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