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못 말려
작성자 정보
- 사골육개장 작성
- 6 조회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시가. 시가는 내 인생의 일부였죠. 꿈속에도 등장할 정도로요. 비록 세상이 흡연에 반대할지라도, 나는 그것들이 내 일상의 일부라고 느낍니다.
내 시가 경험은 19세가 됐을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였고 나는 미 해군에 입대한 이래 태평양에서 구잠정(대잠수함전에 특화된 소형 쾌속 군함) 함장을 맡고 있었죠.
문제는 내가 너무 어리다는 거였습니다. 나보다 연상인 25명의 수병과 두 장교로 이뤄진 배를 지휘한다.. 심각한 심리적 문제의 야기였죠.
내가 상관이고 권위를 지녔다는 것을 어떻게 주지시켜야 할까?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내 선택은 시가였습니다. 커다란 시가(비록 품질은 별로일지라도)를 물고 있노라면 19살 소년을 진짜 배의 함장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니까요.
전쟁이 끝나고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서는, 입대 전 잠시간 일했었던 일간지 신문사로 복직했습니다. 물론, 기사를 써 내려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시가를 피워댔죠. 여전히 싸구려에다 냄새도 고약한 브랜드의 시가를요.
그게 어찌나 못마땅했던지, 훌륭한 여성 기자 하나가 동료 직원들로부터 모금한 19달러 32센트를 건네고는 이러더군요.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여기 기부금이요. 이거 갖다가 좀 좋은 품질의 시가를 사 피세요!'
동료들의 너그러운 기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가였던 쿠바산 수입품으로는 갈아타지 못했습니다. 그건 내가 35세가 됐을 무렵에나 가능했어요.
35세 무렵, 나는 떠오르는 젊은 미국 정치인을 위해 일하게 됐습니다. 네, 존 케네디였죠. 그는 쁘띠 업만을 즐겨 피웠고, 나는 그와 함께 일하는 동안 발맞춰서 쿠바산 시가로 업그레이드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죠. 이후론 내내 쿠바산 시가를 피웠습니다. (주: 쁘띠 업만은 쿠바 하바나에서 생산되는 세계적 시가 브랜드 H. 업만사의 소형 사이즈 시가)
1961년이었습니다. 케네디를 따라 대변인으로 백악관에 들어가게 된 직후였죠.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4월경, 미국은 미국 정부의 도움을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던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처참한 실책을 겪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초저녁에 대통령이 나를 집무실로 불렀습니다. 엄숙한 가운데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피에르, 자네 도움이 좀 필요해.'
'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무엇이죠, 대통령님?'
'시가.. 시가가 좀 많이 필요해.'
'네,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쁘띠 업만, 1,000개 정도.'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하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서 몸만 약간 떨었죠.
'언제 필요하신 거죠, 대통령님?'
'내일 아침까지.'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고심하며 사무실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래도 나는 확고한 쿠바 시가 애호가였습니다. 아는 가게가 많았죠. 그래서 곧장 저녁 늦게까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다음 날 아침 8시경. 백악관 사무실로 들어서자 대통령 집무실에서 걸려온 직통 전화가 이미 울려대고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즉시 집무실로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피에르, 어떻게 됐지?'
문을 들어서자마자 묻더군요. 그래서 아주 잘 됐다고 대답했죠.
왜냐하면, 밤새 1,200개의 쁘띠 업만을 구한 상태였으니까요.
(AI image generated by The Wonder Omnibus)
케네디는 미소를 짓고는 책상 서랍을 열었습니다. 그리곤 기다란 서류를 꺼내어선 즉시 서명하기 시작했죠. 그건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주: 쿠바와의 외교 관계 갈등에 따른 경제 제재 조치)' 서류였습니다. 미국 내 모든 쿠바산 제품을 금지하는 법령이었죠.
케네디가 서류에 서명한 순간부터 쿠바산 시가는 미국에서 불법이 된 겁니다. 서명 직전 공수한 1,200개의 쁘띠 업만을 제외하곤 말이죠."
에필로그
: 정계를 떠난 이후 피에르 샐린저는, 자신이 세계 최고의 쿠바 시가라 생각하는 파르타가스 루시타니아로 갈아탔다고 한다. 시가 애호가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참조
<Cigar Aficionado/Great Moments: Kennedy, Cuba and Cigars> Pierre Salinger
2011년 2월 12일 시작된 이상한 옴니버스는, 읽는 재미와 더불어 불가사의하고 오컬트적이며 초자연적인 것을 믿게 만드는 비즈니스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게 목적입니다. 부디, 이상한 옴니버스를 통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숟가락을 구부리는 일'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시길.
이상한 옴니버스는 '제임스 랜디 교육재단(James Randi Educational Foundation)' 멤버 출신으로 인터넷 컨텐츠물, 서적물, 미스터리 및 범죄 소재 방송 프로그램들 자문을 통해 '사이비로 인한 인간 마음의 부패' 문제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