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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지도로 보는 삼국지 3대 전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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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비드빵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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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대 전투라 하면 보통

조조와 원소 간의 관도 대전,

조조와 손권ㆍ유비 연합 간의 적벽 대전,

유비와 육손ㆍ손권 간의 이릉 대전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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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도 대전 (200년)

기주를 기반으로 한 원소가 북평태수 공손찬과 전쟁을 치르며 병주, 청주, 마지막엔 공손찬의 근거지인 유주까지 먹어버리며 하북 나아가 중원의 최강 군벌로 떠오른 원소 세력과 헌제를 모신다는 가장 중요한 명분을 획득하며 예주, 연주, 서주 3주를 차지하고 있던 조조 세력 간에 벌어진 대규모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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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의 보급고를 털며 조조가 승기를

잡아 원소군을 본격적으로 격퇴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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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 대전 이후 원소가 급사하며 그의 아들들인 원담과 원상이 분열하는 바람에 차례로 조조에게 각개격파 당하며 마침내 조조가 화북을 통일하며 압도적 힘을 가진 군벌이 됨

2. 적벽 대전 (2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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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 최강의 군웅 원소를 무찌르고 화북 지방을 평정한 조조가 남쪽으로 방향키를 돌려 형주의 유표와 양주(흔히 강동이라 부르는 곳)의 손권에게 투항할 것을 권유하지만, 유표와 손권은 이를 거부하게 되고 조조는 남하하여 유표에게 의탁해 있던 유비 일파를 추격하고 유표가 죽고 친조조파였던 유종의 형주는 조조에게 투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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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까지 조조에게 투항해버리자 고민에 빠진 손권은 주유와 노숙, 그리고 유비 진영의 설득으로

마침내 조조와 전쟁을 결의했다

한편, 수상전에 경험이 없는 조조군 병사들이 뱃멀미가 심해 배를 서로 묶어놓았다는 걸 간파한 주유는 황개를 시켜 화공으로 조조군에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이후 주유는 퇴각하는 조조군 휘하의 명장 조인이 지키던 형주 남군(강릉)을 빼앗는 데까지 성공하며

형주에서 조조 세력을 어느 정도 몰아냈다

한편, 유비는 형주 남쪽의 3군을 점령하고, 오와 협상 끝에 주유가 빼앗은 남군의 서쪽 일부를 잠시 빌리는 소득을 얻었다

3. 이릉 대전 (221년 ~ 2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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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년경 유비가 조조의 땅이었던 한중까지 빼앗는 데 성공하며 관우가 지키는 형주, 본거지 익주를 비롯해 조조 입장에서도 결코 무시못할 세력으로 성장

원래 제갈양의 천하삼분지계의 핵심은 가장 강대한 위나라에 맞서 손권의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한중 땅과 형주 땅 양면에서 동서로 위를 향해 북진하여 조조가 차지하고 있는 관중 땅의 핵심 장안과 위나라의 수도인 허창을 친다는 계획이었다. 한마디로 형주와 한중 둘 중 어느 한 쪽만 없어져도 성립될 수가 없는 소위 양동 작전이었던 셈. 즉 이를 위해선 강동의 손권과 화친을 굳게 맺는 게 핵심이었다. 문제는 남군(강릉) 땅에서 사실상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오나라를 얕잡아 보며 노숙의 설득에도 빌려간 땅 내놓으라는 손권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면전에서 손권을 모욕하기까지 하는 등 오나라가 배신할 여지까지 줘버렸다

결국 오나라는 조조와 비밀 동맹을 맺고 형주를 탈환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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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관우가 위나라의 명장 조인이 지키던 번성과 양양을 공략하느라 자신의 근거지였던 형주 남군(강릉) 땅에서 빠져나온 상태였다

당시 오나라 측 사령관이었던 여몽과 육손의 기만 계책에 속아 관우는 그 둘을 얕보고 방심한 나머지,

자신의 원래 본거지인 남군 땅에 잔여 병력을 소수만 남겨두고 다 위나라 양양ㆍ번성 쪽으로 북진한 상태였다

한편, 관우의 북진에 위협을 느낀 조조는 우금ㆍ방덕을 지원군으로 보내 번성과 양양에 대한 관우의 포위를 풀려고 했으나 오히려 수공에 역공당해 궤멸에 가까운 피해만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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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각, 오나라군은 대도독 여몽과 육손의 지휘 하에 관우의 근거지 남군을 시작으로 주변의 성들을 점령해 나가며 관우의 후방 퇴로를 차단해 버렸다

여기에 조조가 2차 지원군으로 보낸 서황이 관우를 격파하며 양양과 번성의 포위가 풀렸고, 이에 관우는 공략을 중단하고 본거지인 남군으로 말고삐를 돌렸다

그러나 남군을 비롯해 형주의 대부분이 이미 여몽과 육손의 부대에 점령된 걸 알고 인근의 맥성으로 간신히 도피했지만, 그 날 밤 몰래 맥성에서 나와 촉 땅으로 탈출하던 중 오나라 장수 반장과 마충에 붙잡혀

손권 앞으로 끌려가 투항을 권유받았으나

손권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죽을 때까지 그를 모욕하였다

결국 분노에 찬 손권의 명으로 참수형에 처해졌다

한편, 관우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유비는 부하들의 만류에도 관우의 복수 겸 형주 탈환을 목적으로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 땅으로 쳐들어 갔다.

유비의 대군이 형주 땅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전투 초반 촉나라 장수들의 파죽지세에 당황했으나 이윽고 전열을 가다듬고, 여몽과 함께 관우 토벌의 1등 공신이자 후기 오나라의 주유라 할 만한 천재 육손을 총사령관격인 대도독에 임명하여 유비에 맞서 싸우게 했다.

유비군은 거칠 것 없이 파죽지세에 가까운 기세로 오나라까지 쳐들어 갈 기세였다

이에 몇몇 오나라 무장들은 육손에게 지금이라도 응전해야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육손은 적이 양 옆이 숲으로 둘러싸인 다소 좁은 길로 기나긴 일자선을 그리며 진격해 들어와 보급선까지 멀어져 사기가 떨어진 그 때를 노려 숲에 불을 지르는 화공을 쓴다면 촉의 군대는 불길에 둘러싸여 도망가기 바쁠 테니 그 때를 노려 오군이 각개격파한다면 대승을 거둘 거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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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육손이 말한 대로 촉군은 일자로 너무 길게 늘어져 양 옆에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꼼짝없이 당할 판이었고, 충분히 촉군이 숲 길로 들어왔다 판단한 육손은 병사들에게 양쪽 숲에 불을 지를 준비를 하고 주요 부대들을 퇴각하는 패잔병들 처리를 위해 출격 대기시켰다

결국 화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촉나라 군대는 뒤이어 오나라군에게 포위ㆍ섬멸당하였으며 간신히 숲에서 빠져나온 병력들도 여기저기 도망가기 바빴으며 대부분은 추격하는 오나라 기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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